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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줄줄줄

감기, 감.

리락콜라 2015. 11. 8. 03:12

야겐 토시로가 미츠타다에게 무언가를 부탁해온 적은 몇번 있었으나 이렇게까지 저자세였던 적은 없었다. 안경을 괜히 손가락으로 들어올리며 부탁이 있어. 하고 운을 뗐다. 


"한 사흘정도만 호네바미를 돌봐주지 않겠어?"

"호네바미 토시로?"


단도들이 아니라 호네바미의 이름에 미츠타다는 외눈을 동그랗게 떴다. 

호네바미에 대해 미츠타다가 알고 있는건 그가 아와타구치의 협차라는 것, 그리고 야겐의 형제라는 것 정도. 그리고 멋대로 어딘가 쿠리쨩을 닮았구나-하는 감상을 품고 있던 정도였다. 

이 혼마루에서 오오쿠리카라, 사요 사몬지와 함께 붙임성없기로는 손에 꼽힐 그 검을 떠올리고 미츠타다는 확인하듯 그 이름을되뇌였다. 야겐은 고개를 끄덕였다. 


"뜬금없는 부탁이라 미안하지만. 그녀석 지금 우리가 돌봐주는 걸 거부하고 있어서 말야. 내일은 나와 나마즈오도 출진이고 이치니는 음..."

"그렇군, 손이 모자라겠네."


최근에 아카시 쿠니유키 포획에 열을 올린 사니와의 방침에 따라 출진부대는 거의 아와타구치(와 미끼인 아이젠 쿠니토시. 본인이 말했듯 영 효과는 없는 모양이지만)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번갈아가며 테이레실을 전세내고 있었다. 

동생들의 반복되는 출진과 부상에 이치고 히토후리의 관심은 거의 그쪽에 쏠려있었고, 그런 그의 복잡한 심경을 쉬운 단어로 표현하자면 아주 짜증스러워하고 있었다. 이치고 본인은 부정하겠지만. 

거기에 플러스로, 개인적인 친분으로 알고 있는 야겐 토시로의 성품을 떠올리자 미츠타다는 어렵지 않게 결론에 도달했다. 


"무슨 짓 했어?"

"하아아, 진지한 녀석에게 거짓말을 하면 이쪽이 피곤해진다는 거."


한숨과 함께 안경 속의 보랏빛 눈동자가 구겨지듯 일그러졌다. 결좋은 검은 머리칼로 덮인 뒷통수를 창백한 손이 마구 헝클었다. 여리고 섬세하게 생긴 소년의 외모에 맞지 않게 상당히 아저ㅆ..아니 남자다운 동작이었다. 그의 마지막 주인과 똑같은 행동에 미츠타다는 왠지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그 남자는 미츠타다의 주인이었던 적도 있었다. 미츠타다는 그 사람에게 큰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최후를 함께 한 주인이라는 것이 야겐에게는 뭔가 특별했던걸까.


"호네바미의 부상은 당장 수리실로 들어갈 정도는 아니지만 꽤 중상이야. 본인은 괜찮다고 우기고 있고 다음 출진도 갈수 있다고 해서... 내가 감기니까 쉬라고 했는데, 신선조네 검한테 뭔가 들은건지 형제들의 간호는 받지 않겠다고 하고 있어서."

"아하."

"지금은 다른 녀석들이 있어서 수리실에 들어갈 상황도 아니니까. 게다가 이번엔 내가 나가니까 이치니도 더 그녀석들을 신경쓸거고. 나마즈오가 호네바미 대신 가겠다고 나선거라, 미안. 아마 나키기츠네 숙부가 최대한 도와줄거야. 수리실이 비는대로 호네바미를 들여보내면 돼."


눈을 맞추지 않고 옆을 보는 소년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미츠타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처음은 아니지?"

"하하하하..."

"알았어, 도와줄게."


활짝 웃으며 올려다보는 야겐의 얼굴에는 익숙한 뻔뻔함이 돌아와 있었다.사실 아까까지가 진심반 연기반이었던 거지만. 미츠타다는 그정도로 속아넘어갈만큼 둔하지 않았고, 또 그걸 굳이 지적할 만큼 야겐과 서먹한 사이도 아니었다. 


"그렇게 말해줄줄 알았어. 고마워, 미츠타다!"

"......뭔가 칭찬 받는 기분은 아닌 것 같은데 말야."

"아냐, 너 좋은녀석이라고. 엄청나게 응. 내가 보증함."

"하카타 군은 부도수표라고 내다 버릴걸 그런거."


야겐도 그 말에는반박하지는 못했다. 



--------------



-식사 챙겨주고 가끔씩 있는지 확인하고 말상대나 좀 해주면 돼. 기본적으로 오오쿠리카라랑 별로 다르지 않을걸. 


...오오쿠리카라에 대한 야겐의 인상은 내가 가지고 있는 호네바미의 인상과 별로 차이가 없는 모양인데. 미츠타다는 옆집 아이와 우리집 아이가 비교당한 기분에 둘의 다른점을 머릿속으로 꼽아보려다 그만두었다. 

둘을 한 방에 넣어두면 아마 하루종일 한마디도 안할거 같다. 혀를 차며 쟁반을 고쳐잡고 문을 두드렸다. 


"호네바미 군,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인데. 들어가도 될까?"

"......응."


정말 작은 목소리였지만 오오쿠리카라와 지내면서 단련된 미츠타다의 귀는 피보호자의 작은 한마디도 놓치는 법이 없었다. 

드륵, 하고 미닫이문을 열고 들고온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호네바미는 이불을 덮고 앉아있었다. 


"뭐하고 있었어?"

"...형제가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정말로 가만히 앉아있을 뿐이었나. 심심하지도 않은가 싶었지만 검이었던 시절에는 더 오랜 시간도 가만히 있었던 본인의 경험이 떠올라 미츠타다는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그러고보니 새벽에 나마즈오 군이 출진하기전에 호네바미 군을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갔어.그 형제란 건 나마즈오 군이야?"

"...응..."

"아침은 뭘 좋아하는 지 몰라서 적당히 죽이랑 몇가지 챙겨오긴 했어. 혹시 좋아하는 게 있으면 점심때 만들어올게. 호네바미 군이 좋아하는 거 있어?"

"......딱히 아무거나 상관없어."

"기분은 어때?"

"...아무렇지도 않아."

 

경계심많은 고양이를 보는 듯한 익숙한 반응이었다. 다만 생각보다 제대로 말을 하고 있다는건, 


'아무래도 불편해하는것 같은데...'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거리만 가져왔다가 처음으로 낯설고 불편한 거리감을 가진 사람을 접해서 어쩔줄 몰라하는 그런 느낌.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나한테 말 걸지 마.'. 

곰곰히 생각하던 미츠타다는 무릎을 세워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정말로 감기인것도 아니니까 기왕이면 조금이라도 편한 사람을 부르는게 좋겠지 싶었다. 


"아츠시 군을 불러올게. 열도 없어보이고 기침도 안하니까. 아츠시 군은 어제부터 수리실에 들어갔으니 지금쯤이면 나왔을거고." 

"잠ㄲ........!!"


이불을 젖히고 벌떡 일어나던 호네바미의 손이 죽그릇을 뒤집었고 뜨거운 죽을 손에 가득 쏟았다. 그러나 호네바미는 아랑곳않고 바닥을 짚은 반대편 손으로, 놀라서 눈을 크게 뜬 미츠타다의 바짓자락을 잡았다. 

미츠타다는 더럽혀진 이부자리를 걷어내고 수건으로 호네바미의 손을 닦았다. 다행히 아주 뜨겁지는 않았지만 손에 울긋불긋한 자국이 남는 것은 피할수 없었다. 걷어낸 이불위에 쟁반을 얹은 다음 미츠타다는 그것들을 한번에 안아들었다.


"잠깐 기다려봐, 금방 돌아올테니까."

"형제들을 부르지 말아줘."

"알았어, 호네바미 군. 아무도 안 부를테니까 잠깐 기다리고 있어."


옷자락을 잡은 손을 떼어놓으며 미츠타다는 말했다.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호네바미의 시선이 미츠타다를 따라붙었다. 

급하게 부엌으로 향하는 미츠타다의 시야끝에 파란 그림자가 스쳤다. 



-----------



찬 수건으로 울긋불긋한 손을 감쌌다. 부어오르거나 물집이 잡히지는 않았으니 금방 가라앉을 것이라고 말해주자 호네바미는 어깨를 늘어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

"신경쓰지 않아도 돼."


빨랫감을 식탁에 두고와서 아마 나중에 카센 군이나 하세베 군 정도가 잔소리를 하겠지만 미츠타다는 정말로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 태연한 태도에 오히려 주눅이 든 듯 호네바미는 미츠타다가 감싸준 수건만 뚫어지게 내려다보았다. 

 

"호네바미 군, 형제들을 걱정하는건 좋지만 좀 더 제대로 말해주지 않으면 알수가 없어."

"......"

"적어도 나는 호네바미 군이 감기를 옮겨도 괜찮다고 생각한 상대니까."

"......딱히 그렇지는,"


않다는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정곡을 찔린 소년의 시선은 아래에서 올라올 줄 몰랐다. 


"나무라는게 아니야. 정말로 괜찮아. 다만 형제들을 소중히 생각한다면 좀 더 형제들에게 표현하는 쪽이 좋지 않을까 싶어서."

"......"

"나마즈오 군이나 이치고 군은 기뻐할껄? 나한테 널 부탁하러 온 건 야겐이었는데, 난 야겐이 그렇게 부탁하는 걸 처음 봤을 정도였어."


이쯤되서 쿠리쨩이라면 쓸데없는 참견이다, 라며 일축하겠지만 과연 신세지고 있는 남한테까지 그럴 면목은 없는 듯 호네바미는 그저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불만과 떨떠름함, 머슥함이 가득한 소년의 얼굴을 보며 미츠타다는 알맞게 식은 죽이 담긴 쟁반을 건네주었다.  


"이건 결국 아침 식사라기엔 좀 애매하게 되어버렸는데.. 점심은 좀 더 늦게 가져와도 될까?"


호네바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호네바미의 방 밖에 나오니 미카즈키가 서성이는 것을 보았다. 아까 호네바미 방에서 나왔을때 얼핏 보았던 파란 그림자의 정체였다. 그는 미츠타다를 보자 반색을 하며 다가오더니 잡고 있던 파란 카리기누 자락을 확 내려놓았다. 와당탕, 하고 조금 커다란 소리를 내며 마루에서 제멋대로 굴러 떨어지는 동그란 것들을 보며, 미카즈키가 당황한 얼굴로 쪼그려 앉아 마루위에 하나 둘씩 주워 올렸다. 

이분도 참.. 미츠타다는 혀를 차며 자기 발치에 굴러온 감을 주워 미카즈키가 올려놓고 있는 옆에 가지런히 내려 놓았다. 고맙구나, 하고 웃는 얼굴은 어울리지 않게 천진해보였다. 아니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은 취소. 


"갑자기 왠 감을 가져왔어?"

"응, 호네바미는 감을 좋아한단다. 그래서 사요 사몬지와 함께 따왔단다."


천하오검은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헤실헤실 웃으며 대답하더니 아, 하고 표정을 굳혔다. 그 작은 표정 변화조차 어쩐지 시선을 끌었다. 


"좋아했단다. 지금도 좋아하는진 잘 모르겠구나."


닫힌 호네바미의 방문을 보며 미카즈키는 어딘지 안절부절한 표정을 지었다. 칭찬 받을 것을 기대하다 실수한 어린애처럼 시무룩하다. 미츠타다는 져지 자켓을 벗어 미카즈키가 들고온 감을 그 위에 올려놓고 보따리처럼 싸맸다. 


"이건 내가 전해줄게."

"정말인가? 고마운지고."


그 말을 들은 미카즈키가 반색을 하며 기뻐했다. 


"저기 그럼 부탁하는 김에 하나만 더 부탁할수 있겠는가?" 




-------------



"미카즈키 씨가 널 만나고 싶어해. 걱정하고 있어. 어때?"


감을 깎아 건네자 호네바미가 그것을 또 뚫어져라 쳐다본다. 

포크를 쥔채 의외로 고개를 저어 거부의사를 표현했다. 그리고는 감 한조각을 한번에 덥석 먹어치웠다.


"미카즈키 씨는 가족이 아니잖아? 혹시 불편한거야?"

"아니 그건 아니지만."


호네바미는 빈 포크로 접시에 놓인 감조각을 찍어올렸다.


"저기 호네바미군, 나한테 꽤 가혹하게 굴고 있는거 알아?"

"쇼쿠다이키리는 천성이 자기한테 가혹한 사람을 좋아해서 오오쿠리카라랑 같이 다니는걸 좋아한다고 어제 야겐과 나마즈오가 설명해줬다."

"으음, 어디서부터 오해를 풀어야할지. 일단 둘이 돌아오면 묻..물어봐야겠네"


두번째 감을 다 깎은 시점에서 첫번째 감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호네바미 군, 감 좋아해?"

"싫어하진 않아."


싫어하지 않는 정도가 아닌거 같은데. 


"이거 미카즈키 씨가 준거야."


그 말에 호네바미는 아주 오래동안 말이 없었다. 세번째 감을 깎았지만 두번째 감은 반도 줄지 않았다. 

미츠타다는 과도를 내려놓았다. 소년이 침묵하는 동안 미츠타다도 함께 침묵했다. 



----------------



"미안하지만 미카즈키 씨가 방에 들어오는건 거절하겠대."

"그, 그런가... 수고를 해주어 고맙구나, 오사후네의 아이야."


고맙다고는 해도 시무룩하게 어깨를 늘어트린 미카즈키에게 미츠타다는 본론을 말해주기로 했다.  


"감 고맙다고, 나중에 답례를 하러 가도 되냐고 물어보던데."

"......"

"혹시 자기가 찾아가는게 불편하냐ㅁ.."

"아니, 아니다! 조금도 불편한것 따윈 없다. 모쪼록 편한때에 내방해주길 기다리고 있겠다고 전해주지 않을텐가."

"응, 그렇게 전할게."


미인이 웃는 걸 보는건 질리지 않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미츠타다는 미카즈키를 보고 마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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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갈수록 성의가 없어지는건 쓰는 사람의 의욕이 주겄기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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